고려불화: 미국으로의 전래
지난 오십여 년 간 연구자들은 고려불화(高麗佛畵)의 특징을 밝히고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고려불화의 존재를 점진적으로 파악해왔다. 본고는 고려불화 가운데서도 미국 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이 그림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미국에 전해지게 되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미국은 동아시아의 여타 불화와 구별되는 고려불화만의 특징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에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내 소장된 대부분의 고려불화는 한 때 중국이나 일본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이전 소장자들은 한국의 작품을 구하고자 이 그림들을 구입한 것이 아니었다. 프리어 미술관(Freer Gallery of Art)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한국 미술품을 식별하고 그 유형을 밝혀내는데 있어 선두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실제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고려불화라 밝혀진 두 그림은 바로 프리어 미술관의 소장품이었다. 20세기에 막 접어든 무렵, 찰스 랭 프리어(Charles Lang Freer, 1854-1919)는 프리어 미술관 소장 <아미타팔대보살도(阿彌陀八大菩薩圖)>(도 2, F1906.269)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도12, F1904.13)를 중국의 불화로 인식한 채 구입하였다. 그리고 1965년에 이르러서야 당시 미술관의 큐레이터였던 제임스 캐힐(James Cahill, 1926-2014)이 두 그림의 국적을 한국으로 새롭게 규명하였다.1
미국에 소장된 고려불화의 국적이 한국으로 재지정된 이래 수 십 년이 지나오면서 미국 내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불화의 수량은 총 16점으로 증가하였다.2 한편 이 그림들은 지리적으로 고르게 분포하기 보다는(표 1) 미국의 동부 해안 지역에 위치하고 유서가 깊은 박물관에 집중적으로 소장되어 있다. 특히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그리고 프리어 새클러 미술관(Freer Gallery of Art and Arthur M. Sackler Gallery)이 소장한 고려불화는 미국 내 박물관에 소장된 고려불화 전체 수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표 1> 의 지도 아래에 표기된 연표를 통해 미국 박물관들은 20세기에 걸쳐 고려불화를 수집해 왔으며 특히 세계대전 이전에 집중적으로 수집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그림들은 기증과 구입을 통해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입수되었다.
한국, 일본 및 유럽에 소장된 고려불화와 마찬가지로 미국 내 소장된 고려불화 또한 아미타불(阿彌陀佛)(도1-5), 지장보살(地藏菩薩)(도 5-8) 그리고 수월관음(水月觀音)(도 9-13)과 같은 정토(淨土) 관련 도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편 보스턴 미술관 소장 <치성광여래왕림도(熾盛光如來往臨圖)>(도 14, 11.4001)와 <원각경변상도(圓覺經變相圖)>(도 15, 11.6142)처럼 보기 드문 도상도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도 1235-36년명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 세트의 하나인 <나한도(羅漢圖)>(도 16; 1979.71)가 있다.3
기증을 통한 고려불화 13점의 입수
본고에서 다루고 있는 고려불화는 소장 박물관이 직접 구입하지 않은 사례가 대다수이다. 실제 전체 수량의 사분의 삼 이상을 차지하는 13점의 그림은 미국 개인 수장가들이 소장하던 작품을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추후 보다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이 기증자들의 일부는 미국에서 아시아 미술을 초창기에 수집했던 중요한 수장가로 여겨지는 인물들이다. <표 2> 는 현재 고려불화로 확인된 그림들을 미국 개인 수장가들이 구입했던 시점을 보여주는 연대표이다. 어니스트 페놀로사(Ernest Fenollosa, 1853-1908)와 윌리엄 스터지스 비글로우(William Sturgis Bigelow, 1850-1926)와 같은 몇몇의 수장가는 동아시아 미술에 주로 관심이 있었다. 반면 찰스 랭 프리어와 하버마이어 부부(Havemeyers)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장가들은 동서양의 미술에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시대와 지역을 가로질러 형태와 미학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하였다.
네 명의 초창기 수장가의 경우, 아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들로 하여금 일본으로 향하게 하였다. 어니스트 페놀로사, 윌리엄 스터지스 비글로우, 그리고 찰스 랭 프리어에게 아시아 국가를 직접 방문한 경험은 실로 인생을 바꿔놓은 사건이라 할만했다. 하지만 이들 이후 대다수의 미국 수장가들은 주로 자국 내에서 작품을 수집하였다.
학자였던 페놀로사와 헤럴드 헨더슨(Harold Henderson, 1889-1974)을 제외한 나머지 수장가들은 매우 부유한 자산가였으며 이들이 형성한 방대한 컬렉션은 그들이 직접 설립하거나 후원했던 박물관의 소장품을 풍부하게 하는데 막대한 기여를 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이들이 기증한 작품은 수 천 점에 달하였으며 수 백 또는 수 천 년의 역사를 지닌 동서양미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컬렉션이었다. 이 수장가들이 구입했던 고려불화 가운데 가장 최근에 구입한 단 한 점만이 실제 한국의 그림으로 인식하고서 수집한 사례이며 나머지는 거의 모두 중국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었다.
영향력이 막대했던 미국의 초창기 수장가로는 보스턴 출신이자 보스턴 미술관과도 관련이 있는 페놀로사와 비글로우, 그리고 디트로이트에 기반한 사업가이자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에 자신의 박물관을 설립했던 찰스 랭 프리어를 들 수 있다. 하버드 대학(Harvard University)에서 철학을 전공한 어니스트 페놀로사는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도쿄 대학(東京大學)의 철학과 교수로 초빙되었다. 그는 이 기회를 통해 훗날 아시아 미술사를 개척한 미술사학자로서 더 큰 명성을 떨치게 되었고 또한 불교도가 되었다. 페놀로사는 보스턴 미술관에 새롭게 신설된 아시아 미술부의 첫 학예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1878년부터 12년간 일본에 머물렀다. 그는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후, 특히 일본에서의 두 번째 체류를 마치고 돌아온 1900년 이후부터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강의를 했으며 아시아 미술사과 미학에 대한 영향력 있는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출간하였다. 또한 그는 1901년 찰스 프리어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이들의 친분은 페놀로사의 7년의 여생 동안 더욱 공고해졌다.
페놀로사의 동향인이자 보스턴의 부유한 내과 의사였던 윌리엄 비글로우 또한 1882년과 1889년 사이에 일본 각지를 여행하였다. 페놀로사와 마찬가지로 비글로우도 불교도가 되었으며 그들은 수많은 소장품을 실견하는 기회를 통해 동아시아 미술사에 대한 수준 높은 식견을 갖추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특히 1880년대는 일본의 사찰과 귀족 가문들이 귀중한 미술품을 대량으로 매각했던 시기로, 아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던 국제 미술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당시 페놀로사와 비글로우는 대규모의 컬렉션을 형성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각기 귀중한 미술품을 다량으로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현재 고려불화로 판명된 그림들을 미국에 최초로 들여온 사람은 페놀로사와 비글로우로 여겨지며 이 그림들은 그들이 일본에 거주하던 1880년대에 구입했던 것으로 짐작된다.4 페놀로사가 구입한 <치성광여래왕림도(熾盛光如來往臨圖)>(도 14; 11.4001)나 비글로우가 입수한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도 8; 11.6139)의 구입 경로는 현재 알려진 바가 없으나, <원각경변상도(圓覺經變相圖)>(도 15; 11.6142)의 출처는 도쿄에 소재한 한 사찰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소장 이력은 1907년 보스턴 미술관에서 작품을 수리하는 도중 그림의 축 안에서 발견된 종이 쪽지로 인해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의 상황은 미술관의 큐레이터인 J. 아서 맥클린(J. Arthur MacLean, 1879-1954)이 시카고 지역의 수장가인 찰스 모스(Charles Morse, 1852-1911)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은 몇 달 전 박물관의 전문 인력에 의해 수리되었는데…이 과정에서 무척 흥미로운 종이 한 장이 발견되었습니다…이 종이에는 이 그림이 약 250년 전(1642년 경이었다고 봅니다) 도쿄 고류지(Koriuji [Koryu-ji])에서 수리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종이에는 여러 발원자의 이름과 시주 금액이 쓰여 있으며 사찰 주지의 수결(手決)이 있습니다.5
비록 맥클린의 편지에는 사찰의 이름이 한문으로 쓰여 있지 않지만 이 그림은 세타가야구(世田谷区)에 소재한 일련종(日蓮宗) 사찰인 고류지(幸龍寺)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고류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1543-1616) 및 그의 일족과 역사적으로 관련이 있는 절이기도 하다.6 한편, 연대미상의 초창기 신규자료 카드에는 이 그림을 비롯한 다른 두 그림을 모두 “중국, 원대(Chinese, Yuan dynasty)”의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일본을 여행했던 또 다른 미국인으로 뉴욕의 부유한 소매업자이자 자본가였던 찰스 스튜어트 스미스(Charles Stewart Smith, 1832-1909)를 들 수 있다. 덕망있는 시민 개혁가이기도 했던 스미스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첫 건물이 세워지기 전부터 박물관의 든든한 후원자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892년, 60세의 나이에 그는 세 번째 부인인 안나 월튼 브라운(Anna Walton Brown)과 함께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에서 스미스는 재팬 메일 신문사(The Japan Mail; 이 신문사는 훗날 현재도 존속하고 있는 재팬 타임즈(The Japan Times)와 합병함)의 소유주이자 아일랜드 태생의 프랜시스 브링클리(Francis Brinkley, 1841-1912)로부터 다량의 일본 회화 컬렉션을 구입하였다.7 스미스가 구매했던 미술품 가운데 고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명백하나 이 그림 또한 브링클리로부터 구입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경로로 구입한 것인지는 현재 알려진 바가 없다. 스미스의 사망 이후 대다수의 일본 판화 컬렉션과 고서는 뉴욕 공공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으로 이관되었으며 고려불화를 포함한 나머지 소장품은 그가 이사를 일임하였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찰스 랭 프리어는 20세기를 전후로 여러 차례 아시아를 여행하였으나 현재 고려불화로 밝혀진 그의 소장품 두 점은 그가 아시아에서 직접 구입한 것이 아니며 두 그림은 모두 파리에서 건너온 것이다. 프리어가 소장했던 <수월관음도> (도 12; F1904.13)는 스미스가 일본에서 구입했던 그림과 매우 유사하다. 이 그림의 소장 이력은19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해에 파리 출신의 수장가인 샤를 페르맹 질로(Charles Firmin Gillot, 1853-1903)가 야마나카 상회(山中商會)로부터 이 그림을 구입하였다.8 요판사진술을 발전시킨 성공적인 인쇄업자였던 질로는 미술상이자 미술 비평가였던 지크프리드 빙(Siegfried Bing, 1838-1905)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계의 일원이기도 했다. 한편 빙은 초창기 자포니즘(Japonisme)의 적극적인 지지자였으며1888년 중반부터 1891년까지 자신이 출판했던 유명 잡지인 『르 자퐁 아티스틱(Le Japon artistique)』을 통해 그 영향력을 확대시켰다.9 그리고 질로는 이 정기간행물의 발간 책임자로서도 활동했다.
1903년 질로 사망 이후, 그의 방대하고도 다양한 수집품은 1904년 2월 8-13일의 일정으로 파리의 뒤랑-뤼엘 갤러리(Durand-Ruel Gallery)에서 첫 경매가 열린 뒤, 그 해 4월 오텔 드루오(Hôtel Drouot)에서 경매가 한 차례 더 이루어졌다. 이 경매에서 총 3,453점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10 지그프리드 빙은 호화로운 경매 카탈로그를 제작하였다. 또한 그는 1903년 6월 말 찰스 프리어와 함께 이 작품들을 직접 검토한 바 있다.11 경매 품목 2004번이었던 <수월관음도> 는 카탈로그에 삽화가 수록된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12 카탈로그의 일본 미술 부분에 실린 작품 설명에서는 작품명을 관음보살의 일본식 명칭인 “Kwannon”(또는 “Kannon”)으로 표기한 반면 그림의 제작자는 오도현(吳道玄)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중국의 화가 오도자(吳道子, 680-c. 760; 카탈로그 상에서는 일본어 명칭인 “Gôdo Ghen”으로 표기)로 추정하였다. 이는 당시 다이토쿠지(大德寺) 소장 <수월관음도> 의 전칭(傳稱)에 의거하였을 수도 있다. 프리어가 파리에서 빙과 함께 그림을 실견하며 작성했을지도 모르는 그의 메모에 따르면 이 그림은 14세기에 일본에서 모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쓰여 있다.
이 경매에서 빙은 프리어의 대리인 자격으로 <수월관음도> 를 5,900 프랑스 프랑(당시 미화 약 3,300달러에 해당)에 구입하였는데 이 가치는 오늘날 미화 약 9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리어는 2년 뒤에 그의 두 번째 고려불화인 <아미타팔대보살도> (도 2; F1906.269)를 미화 3,500달러에 구입하였는데 이 그림은 <수월관음도> 보다 크기가 좀 더 크며 당시 카탈로그에는 중국의 작품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프리어는 1906년 11월, 유럽을 비롯해 좀 더 긴 여정으로 두 번째 아시아 방문을 나서는 길에 뉴욕의 야마나카 상회로부터 이 그림을 구입하였다. 당시 이 그림은 송대(宋代, 960-1279) 장사공(張思恭; 실제 표기는 일본어 명칭인 “Cho Shikyo”를 사용)의 작품으로 전칭되었다. 야마나카 상회의 직원에 따르면 이 그림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소장 이력을 지니고 있다:
약 30여 년 전[1876년 경] 야마나카 기치로베[山中吉郎兵衛, ?-1913]가[13] 이 그림을 고야산(高野山)에 자리한 사찰인 쇼죠신인(清浄心院)에서 구입하였고 약 10년 뒤[1886년 경] K. 와카이[와카이 겐자부로(若井兼三郎), 1834-1908]에게 판매했습니다. 와카이 겐자부로가 자신의 수집품을 모두 T. 하야시[하야시 다다마사(林忠正) 1853-1906]에게 매각한[1889년 경] 이후, 이 그림은 지난 봄 그가 별세할 때까지 그의 개인 소장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14
쇼죠신인은 지금까지도 오사카 남부의 고야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위에서 언급한 이전 소장자들은 모두 1884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일본 미술을 널리 알리는데 힘쓴 인물들이다. 1884년 와카이와 하야시는 파트너쉽을 구축하여 파리에서 갤러리를 성공적으로 개관하였고 19세기 말까지 빙의 가장 큰 경쟁 상대로 성장하였다.
앞서 살펴본 인물들 이외에 초창기 고려불화 수장가로는 파리의 보석상이었던 앙리 베베르(Henri Vever, 1854-1942), “슈가킹(Sugar King)” 으로 불리었던 헨리 하버마이어(Henry Havemeyer, 1847-1907)와 그의 아내 루이진(Louisine Havemeyer, 1855-1929), 그리고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설립자의 딸이자 2대 총장을 역임했던 엘리자 그린 멧캐프 라데크(Eliza Greene Metcalf Radeke, 1854-1931)를 들 수 있다. 이들이 고려불화를 어떻게 구입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한 내용이 알려진 바가 없으나 이들 주변의 지인과 인맥을 고려한다면 앞서 언급했던 관계망 속에서 작품을 수집했을 것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고 여겨진다.
가령 베베르는 파리에서 빙과 친목을 도모한 일원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빙과 하야시가 매월 주최한 “일본 미술의 친구(Les Amis de l’Art Japonais)”라는 만찬 모임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하였다. 한편 베베르는 빙이 사망한 1905년 이전에 그로부터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도 6: S1992.11)를 구입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입증할만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베베르의 수집품은 주로 이란과 인도의 삽화필사본, 회화, 그리고 드로잉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지장보살도> 는 상당히 예외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그림은 1992년 익명의 기증자에 의해 새클러 미술관(Arthur M. Sackler Gallery)에 기증되었다.
하버마이어 부부는 미국의 대호황 시대(Gilded Age, 1873-1893)에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수장가 중 하나였다. 헨리 하버마이어가 이미 성공적인 가업을 더욱 확장시켜 설립한 아메리카제당(American Sugar Refining Company)은 미국 동부 지역 설탕의 공급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거대한 기업이었다. 뉴욕에 거주하였던 하버마이어 부부는 다양하면서도 심도있는 컬렉션을 형성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수집품의 상당 부분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하였다. 이 부부는 상당한 수량의 아시아 미술을 수집했지만 아시아를 직접 방문한 적은 없었다. 하버마이어의 기증품 가운데는 현재 고려불화로 밝혀진 <지장보살도> (도 7; 29.160.32)와 <수월관음도> (도 10; 29.100.461) 두 점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그림들의 수집 경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작품의 구입 시기는 헨리 하버마이어가 사망한 1907년 이전으로 짐작되나 단정짓기는 어렵다. 또한 이 부부는 파리의 모든 주요 예술계의 일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뉴욕의 야마나카 상회로부터도 주기적으로 아시아 미술품을 구입했기에 이 그림들을 정확히 어디서 구하였는지 알기 어려운 실정이다.
엘리자 라데크 또한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박물관의 아시아 컬렉션을 구축하기 위해 야마나카 상회를 애용하였다. 따라서 라데크가 소장헀던 <수월관음도> (도 13; 17.378)는 야마나카 상회로부터 구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지막 세 명의 수장가들이 소장했던 고려불화 세 점은 모두 일본에서 건너왔으며 박물관으로 입수되기에 앞서 개인 소장품으로 보다 오랜 기간 동안 소장되었다. 예를 들어 뉴욕의 자본가인 그렌빌 윈스롭(Grenville Winthrop, 1864-1943)이 1937년 야마나카 상회로부터 구입한 <수월관음도> (도 9; 1943.57.12)는 본래 일본의 막강한 사업가인 고 세이노스케(郷誠之助)의 소유였다. 현재 이 그림은 하버드대학교 미술관(Harvard University Art Museums)에 소장되어 있다.
그로부터 일 년 뒤인 1938년,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1934-1956)로 부임하기 이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큐레이터(1927-1929)로 재직했던 헤럴드 헨더슨(1889-1974)은 일본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와중에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도 4; 61.204.30)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림을 보관하던 상자에 붙여진 스티커를 통해 이 그림은 교토 소재 미술상인 “G. 기타나카(北中)”에 의해 판매된 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에이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 1887-1975)는 <아미타팔대보살도> (도 1; B72D38)를 도쿄의 고미술상인 마유야마(繭山)로부터 구입하였다. 그리고 이 그림은 1972년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Asian Art Museum)에 기증되었다. 해당 그림은 『아시아미술 아카이브(Archives of Asian Art)』에서 1972년 미술관이 입수한 작품 목록 가운데 고려시대(高麗時代, 918-1392)의 그림으로 소개되었으며, 마유야마 류센도(繭山龍泉堂)의 창업 70주년을 기리는 『마유야마 70년(Mayuyama Seventy Years)』이라는 제목의 도록에서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그림은 미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불화 가운데서도 한국미술품이라는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구입한 첫 작품인 것이다.16
구매를 통한 고려불화 3점의 입수
브런디지가 미국의 수장가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의 미술품이라는 인식 하에 고려불화를 구입한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클리브랜드 미술관(Cleveland Museum of Art)은 미국 박물관으로서는 처음으로 고려불화를 계획적으로 구매하였다. 그리고 이는 고려불화의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하는 일종의 계기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13세기 고려시대 <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rt;로 알려진 세트의 하나였기 때문에 현명하고도 안전한 매입이라 할 만하다. 한편 이 그림 또한 일본의 딜러를 통해 입수되었으며 이 그림이 일본에 소장되었다는 사실은 그림에 보이는 하나의 디테일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화면에서 용의 뒷다리 부분에 보이는 원형의 손상은 이 그림이 장벽화(障壁畵)로 표구될 당시 문의 손잡이를 삽입하면서 생긴 것으로 추청된다는 점이다. 17 이처럼 일본의 장벽화를 장식하기 위해 그림의 용도를 변경한 점은 이 그림의 특수한 이력이라 할 수 있다.
나머지 2점의 고려불화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20세기 초반 중국의 그림으로 인식하여 구매한 것이다. 이 가운데 <아미타삼존도> (도 3; 30.76.298)에 대한 입수 정보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흔치 않은 그림이라 할 수 있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도(阿彌陀佛∙地藏菩薩圖)> (도 5; 13.5)의 경우는 박물관 초창기의 장식 미술 큐레이터였던 개럿 챗필드 피어(Garrett Chatfield Pier, 1875-1943)가 일본에서 찾아낸 것이다. 구입 당시에 인지하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특이한 화면 구성을 보이는 드문 그림을 고른 것이라 할 수 있다.18 영국 태생인 피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잠시 근무한 바 있으며 그는 박물관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대 이집트 유물 컬렉션을 형성한 이집트 전문가로 보다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동아시아를 적어도 한 번은 여행하였으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베이징에 소재한 영락제(永樂 emperor, 1360-1424)의 정릉(長陵)에 관한 글과 『일본 사원의 보물(Temple Treasures of Japan)』이라는 흥미로운 불교 사찰 가이드를 집필했다.19
결론
본고에서 다룬 16점의 고려불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먼저 미국 수장가와 박물관이 구입한 고려불화는 모두 일본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절반은 일본 현지에서 그리고 적어도 사분의 일은 야마나카 상회로부터 구매한 것이다. 1970년대에 한국의 작품으로 인식하고서 구매한 두 사례를 제외하면 이 그림들은 모두 세계대전 이전에 구입된 것이다. 도쿄와 고야산의 사찰에 소장되었던 두 작품을 포함한 총 4점의 그림은 1880년대에 일본의 사찰이 매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4점의 그림 이외에 나머지 고려불화 가운데서도 분명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1912)가 가져온 경제와 문화의 변화로 인해 사찰을 떠나게 된 그림이 추가적으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그림들이 언제, 어떻게 일본의 사찰에 전래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세계대전 이전에 구입되었던 그림들은 당시 일반적으로 중국의 그림으로 여겨졌다. 이 가운데 몇몇 그림들은 특정 화가, 특히 당대(唐代, 618-907)의 유명했던 오도자 또는 일본 사찰에 소재한 특정 불화 이외에는 사실상 알려져 있지 않은 송대 장사공의 작품으로 전칭되었다. 미국 박물관에 소장된 고려불화 가운데 적어도 4점은 장사공의 작품으로 전칭된 바 있으며 이는 주로 그림을 보관했던 상자에 쓰인 명문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또한 유키오 리핏(Yukio Lippit)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세기 초 출판물을 통해…족자 형태의 한국 불화는 중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그림들은 점차 “장사공 양식”의 그림으로 분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러한 분류법에 사로잡혀 있던 20세기 초반의 해외 수장가들은 중국의 유명 화가가 그린 작품을 수집한다는 인식 하에 종종 고려불화를 구입하였다.20
1960년대 중반 프리어 미술관 소장 고려불화 두 점이 한국의 그림으로 밝혀지면서 기존의 전칭작에 대한 신중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브루클린 박물관 소장 그림들도 10년 사이에 고려불화로 새롭게 지정되었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결과, 미국 박물관에 소장된 고려불화 16점은 20세기 아시아 미술의 수집 경향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 대부분의 고려불화는 20세기에 막 접어든 수십 년 사이에 구입되었다.
- 당시 영향력 있는 아시아 미술 수장가들은 고려불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 이 수장가들은 보다 화려하게 표현된 독존의 수월관음도를 선호하였다.
- 6점의 고려불화는 수장가들이 일본을 여행하는 중에 구입하였다.
- 나머지 10점 가운데 적어도 4점은 그 출처를 야마나카 상회로 밝힐 수 있다.
- 2점의 고려불화는 일본 도쿄와 고야산에 소재한 사찰과 관련이 있다.
- 이 그림들의 금전적 가치는 프리어가 1904년과 1906년 고려불화를 구입하면서 각기 지불했던 미화 약 3,500달러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는 오늘날의 미화 약 9만달러에 달하는 가치를 지닌다.
주
[1] 작품의 재지정 경위는 박물관의 영구 보존 기록인 프리어 미술관 “폴더 시트(Folder Sheets)”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현재 소장품 데이터베이스에 디지털 파일의 형식으로도 저장되어 있다. 보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캐힐은 <아미타팔대보살도> 만을 14세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았으며 <수월관음도> 는 이 보다 조금 늦은 시기인 “한국, 이조시대(李朝時代), 15세기(Korea Yi dynasty, 15th century)”로 추정하였다. 현재는 이 그림 또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2] 菊竹淳一 · 鄭于澤, 『高麗時代의 佛畵』 (시공사, 1997); 菊竹淳一 · 鄭于澤, 『高麗時代の仏画』, (時空社, 2000) 참조. 다음의 논문은 위 문헌을 보완한다. 정우택, 「미국소재 한국불화 조사 연구」, 『東岳美術史學』13(2012), pp. 33-63.
[3] 클리브랜드 미술관(Cleveland Museum of Art) 소장 <석가삼존도(釋迦三尊圖)> (1982.25)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이 함께 그려진 상당한 규모의 세 폭짜리 그림 가운데 중잉에 놓이는 그림이다. 협시 보살이 표현된 나머지 2점은 현재 도쿄의 세이카도분코(靜嘉堂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구입 당시 한국의 불화로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원대(元代) 혹은 명대(明代) 초기의 중국 그림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논의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4]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았던 어니스트 페놀로사는 1886년 보스턴으로 돌아오기 이전에 자신의 수집품을 보스턴 지역 내과 의사이자 자선가였던 찰스 고다드 웰드(Charles Goddard Weld, 1857-1911)에게 매각하였다. 그리고 매각 당시의 조건은 웰드의 사망 이후, 수집품을 보스턴 미술관에 귀속시키는 것이었다. 보스턴 미술관이 페놀로사 컬렉션을 입수한 공식연도는 1911년으로 페놀로사가 사망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소장 경위에는 찰스 웰드의 이름 또한 명시되어 있다.
[5] 1907년 11월 21일자로 기재된 해당 편지의 복사본은 보스턴 미술관의 소장품 파일에 보관되어 있다.
[6] 이 사찰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 프리어 새클러 미술관의 프랭크 펠튼스(Frank Feltens)에게 감사를 전하고자 한다.
[7] 브링클리는 1867년 일본으로 이주하여 40년 이상을 거주하였다.
[8] 야마나카 상회와 관련된 소장 이력은 그림의 구입 당시 함께 입수된 메모에 근거한 것이다.
[9] 이 잡지에 대한 소개는 다음의 문헌을 참조. Gabriel P. Weisberg, “On Understanding Artistic Japan,” The Journal of Decorative and Propaganda Arts 1 (Spring 1986), pp. 6-19.
[10] Galeries de Durand-Ruel, Collection Ch. Gillot: Objets d'art et peintures d'Extreme Orient (Paris: Galeries de MM. Durand-Ruel, 1904).
[11] 프리어 새클러 미술관 아카이브 자료인 6월 25일과 27일자 찰스 랭 프리어의 일기 및 1903년 8월 26일자로 지크프리드 빙에게 보낸 편지 참조.
[12] Galeries de Durand-Ruel, Collection Ch. Gillot, 223, 266, lot 2004.
[13] 기치로베 야마나카(1913년 사망)는 아다치 (야마나카) 사다지로(安達(山中)定次郎, 1866-1936)의 양부이자 1883년 뉴욕 야마나카 상회의 설립자였다. 사다지로는 1889년 양부의 딸인 야마나카 테이(山中貞)와 혼인하였기 때문에 기치로베의 야마나카의 사위이기도 하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의 문헌을 참조. Sonoko Monden, "Yamanaka Sadajirō (1866–1936)," in BRITAIN & JAPAN: Biographical Portraits (Leiden, The Netherlands: Global Oriental, 2013), 278-79 doi: https://doi.org/10.1163/9789004246461_022
[14] 프리어 새클러 미술관 아카이브 자료인 F1906.268의 구매 기록 참조.
[15] 본래 하버마이어 부부의 최초 유증 희망 목록에는 두 작품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박물관 큐레이터의 요청으로 추가되었다.
[16] 繭山順吉, 『龍泉集芳 : 創業七十周年記念』 (繭山龍泉堂, 1976) 참조.
[17] 이러한 관찰은 클리브랜드 미술관의 전 보존전문가인 제니퍼 페리(Jennifer Perry)에 의한 것이며 관련 내용은 박물관 유물 파일에 보관되어 있다.
[18] 유키오 리핏(Yukio Lippit)은 이 그림에 관한 도판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지장보살과 아미타불의 조합은 현존하는 고려불화에서 보기 드문 특이한 사례이다. 이 그림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두 존상은 별개의 비단에 그려진 것임이 확인되었다. 이는 이 작품이 본래 두 점의 그림이었거나 세 폭짜리 그림의 일부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Kumja Paik Kim, Goryeo Dynasty: Korea’s Age of Enlightenment, 918-1392 (San Francisco: Asian Art Museum, 2003), p. 73 참조.
[19] Garrett Chatfield Pier, “The Mortuary Temple of Yung-Lo Near Peking,” Art and Archaeology: An Illustrated Magazine 1 (1914), 103–111; and Temple Treasures of Japan (New York: F. F. Sherman, 1914).
[20] Yukio Lippit, “Goryeo Buddhist Paintings in an Interregional Context,” Ars Orientalis 35 (2008), 201–202.
참고문헌
Galeries de MM. Durand-Ruel. Collection Ch. Gillot: Objets d'art et peintures d'Extreme Orient. Paris: Galeries de MM. Durand-Ruel, 1904.
Kim, Kumja Paik. Goryeo Dynasty: Korea’s Age of Enlightenment, 918–1392. San Francisco: Asian Art Museum,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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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oi.org/10.1163/9789004246461_022
Pier, Garrett Chatfield. “The Mortuary Temple of Yung-Lo Near Peking.” Art and Archaeology: An Illustrated Magazine 1 (1914): 10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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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sberg, Gabriel P. “On Understanding Artistic Japan.” The Journal of Decorative and Propaganda Arts 1 (Spring 1986): 6–19.
菊竹淳一 · 鄭于澤, 『高麗時代의 佛畵』, 서울: 시공사, 1997.
정우택, 「미국소재 한국불화 조사 연구」, 『東岳美術史學』13, 2012, pp. 33-63.
繭山順吉, 『龍泉集芳 : 創業七十周年記念』, 東京: 繭山龍泉堂, 1976.
菊竹淳一 · 鄭于澤, 『高麗時代の仏画』, ソウル: 時空社,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