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의하면 선재동자(善財童子)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의 가르침을 받아 53명의 선지식(善知識)들을 만나는 구법(求法) 여행을 떠난다. 이 고려(高麗) 수월관음 도상은 기본적으로 선재동자와 관음보살(觀音菩薩)이 만나는 28번째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 그림은 관음보살이 바위 위에 반가좌(半跏坐)한 자세로 앉아 있고, 오른손 앞에는 정병(淨甁), 그 아래 화면 구석에는 관음보살을 올려다보는 듯한 선재동자가 묘사된 고려불화(高麗佛畵) 전형의 수월관음도이다.

몸체부는 약간 붉은 빛이 감돌며 윤곽과 세부선은 밑선인 먹선을 따라 주선(朱線)을 중첩하여 표현하였다. 베일에는 통례의 마엽문(麻葉文)이 보이지 않으며 금니(金泥)로 당초원문(唐草圓文)을 그려 넣었다. 윤곽과 주름선은 밑선인 먹선을 따라 백색선을, 다시 그 위에 금니선을 그어 표현하였으며, 그 선을 따라 백색 안료로 바림을 하여 입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치마는 전면에 주(朱)를 칠하고 백색 안료로 귀갑문(龜甲文)을 그려 넣었고 그 위에 다시 상하 대칭의 연화문(蓮華文)을 묘사하였다. 치마의 단(端)에는 먹선으로 윤곽을 잡고 금니로 보상화당초문(寶相華唐草文)을 그려 넣었다.

이 그림은 애석하게도 정병과 대나무를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안료의 박락과 바탕 비단의 손상이 많다. 한편 비록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으나 화면 하부 중앙에 주목할 만한 내용이 표현되었다. 바로 붉은색의 원환(圓環)과 녹청색의 옷을 입은 인물인데 이는 법화경변상(法華經變相) 가운데 하나인 뇌신(雷神)을 묘사한 것이다. 이처럼 수월관음도에 법화경변상이 그려진 사례는 일본 단잔진자본(談山神社本), 세이카도분코미술관본(靜嘉堂文庫美術館本), 그리고 최근에 공개된 도쿄예술대학본 등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이다. [1]

제작 시기는 베일의 형상이 과장되고 얼굴형이 약간 세장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14세기 후반으로 짐작된다. 이 그림은 고려시대(高麗時代, 918-1392) 후반까지도 법화경변상 도상이 수월관음도에 꾸준히 수용되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서울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정우택

주
[1] 이 그림들의 도판은 다음의 문헌을 참조. 菊竹淳一 · 鄭于澤, 『高麗時代의 佛畵』(시공사, 1997), pp. 162-65, 도 73(단잔진자본), pp. 174-75, 도 79(세이카도분코미술관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