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보살은 석가여래(釋迦如來)가 입멸(入滅)한 뒤부터 미륵불(彌勒佛)이 출현할 때까지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관음보살(觀音菩薩)이 현실의 죄나 고통을 없애 주는 보살이라면 지장보살은 죽은 뒤에 지옥의 고통에서 구제해주는 보살로 인식되었다. 이 때문에 지장 신앙은 한국에서도 일찍부터 성행하였다. 특히 후손들은 먼저 죽은 가족들이 지옥에 떨어질 것을 걱정하여 지장보살을 적극 신봉하였다. 지장보살은 흔히 삭발한 승려의 모습으로 표현되며, 한 손에는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이 그림의 지장보살은 하체는 약간 왼쪽을 향하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들어 손바닥 위에 보주를 올려놓고 있으며, 왼손은 긴 석장을 곧게 세워 잡고 있다. 보살의 머리는 삭발한 승려의 모습으로 미국 프리어 미술관본(Freer Gallery of Art)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본(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표현된 지장보살의 형상과도 같다.

이 그림은 비교적 화면이 작고 변색 때문인지 약간 어둡게 보이지만 안료의 박락이 별로 보이지 않아 묘법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채색은 가사(袈裟)에는 군청(群靑)을, 치마에는 주(朱)를 사용하였으며 몸체부에는 금니(金泥)를 칠하였다. 가사의 문양은 직경 약 3센치 정도의 원형의 국화문(菊花文)이고 치마에는 타원의 나선형 구름문을 사용하였다. 왼쪽 가슴에는 속내의를 묶은 삼각형의 장신구가 보이며, 가슴의 치마를 묶은 단(端)에는 소위 패랭이 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몸체부의 윤곽선과 이목구비는 가는 주선(朱線)이며 가사와 치마의 윤곽선은 모두 금니를 사용하였다.

이 그림은 이와 같은 채색 기법과 문양만으로도 고려불화의 전통 속에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기법 이외에도 금니의 적절한 사용과 섬세함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 그림은 고려시대(高麗時代, 918-1392)의 불화임에 틀림이 없다. 제작 시기는 다른 사례와 비교하여 율동감이 부족하고 공간을 남기지 않을 만큼 가사에 문양이 많은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14세기 중반으로 짐작된다.

—서울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정우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