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의하면 선재동자(善財童子)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의 가르침을 받아 53명의 선지식(善知識)들을 만나는 구법여행을 떠난다. 고려(高麗) 수월관음 도상은 기본적으로 선재동자와 관음보살이 만나는 28번째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이 그림은 1310년 일본 가가미진자본(鏡神社本)과 1323년 센오쿠하쿠코칸본(泉屋博古館本)과 같은 통례의 수월관음도와는 달리 화면을 향하여 왼쪽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약간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측면향의 자세이다. [1] 관음보살은 오른손에 줄기가 긴 연화를 들고 왼손에 투명하게 표현된 염주를 잡고 있다.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淨甁)은 보살의 왼손 위쪽에 그리고 선재동자는 화면을 향하여 오른쪽 아래에 묘사되어 있다.

베일의 지문(地文)은 마엽문(麻葉文)으로 백색 안료를 사용하였고 그 위에 금니(金泥)로 당초원문(唐草圓文)을 그려 넣었다. 윤곽 및 주름선은 밑선인 먹선을 따라 금니선(金泥線)을 중첩하여 그었으며, 그 선을 따라 백색 안료로 바림을 하여 입체감을 나타내려 하였다. 치마는 주(朱)를 전면에 칠하고, 백색 안료로 바탕 문양인 귀갑문(龜甲文)을 그리고, 그 위에 상하 대칭의 타원형 연화문(蓮華文)을 금니로 그려 넣었다.

이 그림은 보관(寶冠)의 중앙부와 화면 아래 가운데 상당 부분의 바탕 비단이 떨어져 나가는 등 손상이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상의 수월관음도는 일본 오카야마현(岡山縣) 조라쿠지본(長樂寺本)과 일본 개인 소장본만이 알려져 있어 매우 특이한 사례임이 틀림없다. [2]

현존하는 세 점의 그림은 색감이 조금 다를 뿐 같은 밑그림을 사용하였거나 아니면 모본(母本)과 모사본의 관계로 짐작될 만큼 아주 유사하다. 이 그림의 제작 시기는 기존의 두 그림에 비하여 문양 배치가 번잡해지고 형상에서 율동감이 줄어드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14세기 중엽으로 짐작된다. 

—서울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정우택

주
[1] 이 그림들의 도판은 다음의 문헌을 참조. 菊竹淳一 · 鄭于澤, 『高麗時代의 佛畵』(시공사, 1997), pp. 150-53, 도. 67(가가미진자본), pp. 154-55, 도 68(센오쿠하쿠코칸본).

[2] 이 그림들의 도판은 다음의 문헌을 참조. 菊竹淳一 · 鄭于澤, 『高麗時代의 佛畵』(시공사, 1997), pp. 196-98, 도. 93(조라쿠지본), p. 199, 도 94(일본 개인 소장본).